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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마지막 여름

잔(도서출판)

지안프랑코 칼리가리치 (지은이), 김현주 (옮긴이)

2023-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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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1973년 첫 출간 후 5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이 잊고 있던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을 다시 만나다.


‘잃어버린 세대’가 낳은 혼란을 대변하는 한 남자 레오 가짜라와 로마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의 환멸적 관계를 통한 군중 속의 고독, 그리고 잔인하리만큼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랑의 모순을 탐구한 소설 《도시의 마지막 여름》은 전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출판 사례를 가지고 있다. 당시 스물여섯 살이던 작가는 밀라노에 본사를 둔 신문사의 특파원으로 로마에 파견되고, 취재를 마친 후 밀라노에 돌아가는 대신 로마에 남아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완성된 원고는 이탈리아의 거의 모든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당하고, 우연히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인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단 하룻밤 만에 소설에 매료된 그녀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 1973년 가르잔티에서 첫 출간된다. 같은 해 이네디토상을 수상하고 한여름 동안에만 17,000부가 팔리는 등 돌풍을 일으켰으나 돌연 출판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이후 이 책은 문학을 연구하는 박사과정의 학생들과 책 애호가들의 탐구 대상이 되면서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퍼지게 되고, 다시 세상에 알려진다. 그렇게 아라그노에서 재출간된 후, 첫 출간 당시 이 소설을 소홀히 여겼던 많은 매체 및 비평가들의 공개적인 사과와 함께 ‘고도로 정교하고 진지한 소설’이라는 호평을 받는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두 번째 판이 소진된 후 책은 또다시 모습을 감추게 되고, 독자들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2016년 봄피아니에서 다시 한번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2021년 작가의 소설 중 처음으로 미국의 출판사 파라, 스트라우스 앤 지루에서 영어로 번역 출간되면서 같은 해 피츠제럴드상과 마르코폴로상을 수상하고, 유럽문학상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된다. 현재 작품성을 널리 인정받아 전 세계 2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잃어버린 로마의 여름, 그 황량함 속 고독과 위태로운 사랑!

1970년대 초, 달콤한 사랑에 중독된 도시 로마에서 그저 하루하루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레오 가짜라.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결혼을 하고 돈을 벌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서른 살이 된 그에게는 그런 전망이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신문사에서 용돈 벌이를 하며 나보나광장을 서성이거나 여자 친구들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일과의 전부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커녕 야망조차 없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삶의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일시적이며 고루한 인간관계 사이에서 환멸을 느끼면서 표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초대를 받고 찾아간 TV 방송국 관계자 렌조의 집에서 아리아나를 만난다. 두 사람은 밤새도록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늦은 봄 새벽 바다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서로에 대해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이 아니기를 바라며, 그는 위태로운 마음과 허영심으로 가득 찬 그녀와 함께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로마에서의 여름을 맞이하는데…….

2021년 피츠제럴드상, 마르코폴로상 수상작
2021년 유럽문학상 최종 후보작
1973년 이네디토상 수상작


내게 주어진 운명이 있고 그것을 따라 살았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본문 중에서

1973년에 첫 출간된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시대를 관통하는 컬트 소설이 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감정을 탐구했다는 점이다. 소설은 1970년대 초,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의 서문에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을 인용한 데서 유명해진 ‘잃어버린 세대’가 낳은 로마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로마는 현재 우리가 아는 유명한 유적 관광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아틀리에의 장인들은 항상 무엇인가를 수리하고 있었다”라는 표현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번화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월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낙후되고 황폐한 모순된 장소로 대변된다. 주인공 레오 역시 밀라노를 떠나 로마에 살고 있지만, 어떻게든 그곳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다 실패해 다시 떠나거나 결승점에 닿더라도 불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게 되는 온갖 부류를 보면서 방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날 내리던 비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잊고 있던 깜짝 선물처럼 도시에 갑자기 내린 봄비는 그 어떤 향수보다 더 향긋한 냄새로 도시를 채우고 있었고, 내 인생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 날만큼 향기 가득한 날은 다시없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낭비적인 인간관계에서 환멸을 느끼며 표류하고 있던 레오는 이런저런 불운들이 한꺼번에 겹친 어느 날, 무작정 빗속을 걷기 시작한다. 우연히 단골 술집에서 평상시 친분이 있는 성공한 TV 프로듀서 렌조를 만나고, 그는 그날 저녁 자신의 아파트에서 있을 칵테일파티에 레오를 초대한다. 레오를 맞은 것은 렌조의 아내 비올라 부인이었고, 그녀는 비에 홀딱 젖은 레오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린다. 렌조 또한 레오를 초대한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듯하다.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고 부유해 보이는 삶을 쫓는 부류였고, 레오는 그들과 어울리는 것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그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오직 허기진 배를 채울 무언가를 찾는 것뿐이었다. 바로 그때 하얀 벨벳 소파에 앉아 혼자서 하는 카드 게임을 하고 있던 아리아나를 만나게 된다. 결코 속할 수 없는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등에 지고도 삶을 포기하지 않을 유일한 이유를 만나게 된 것이다.

사실 세상은 최선을 다하긴 했다. 며칠간 날씨는 따뜻했고 하늘도 푸르고 잔잔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바로 그 멋진 날씨가 내 고통을 더할 뿐이었다. 내게 가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도무지 사라지지 않아 집 안을 서성였고, 발코니에 앉아 책을 읽거나 담배를 피우면서도 내가 왜 이러는지를 몰라 당황스러웠다.
—본문 중에서

그날 새벽 레오와 아리아나 두 사람은 함께 도시를 표류하면서 서로가 느끼는 그 묘한 감정이 사랑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부인한다. 사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이 아니기를 바라는 씁쓸하고도 위태로운 역설이다. 아리아나를 만나 이후 레오는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 위해 모진 말로 상처를 주고 차갑게 외면하면서도, 동시에 그녀를 너무나 강하게 원하는 모순과 마주한다. 그의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가장 원했을 그 약간의 온기를 느끼고자 그녀의 알몸 옆에 몸을 뉘여 작고 단단한 배 위에 손을 올린다. 하지만 자신을 더 만져달라는 그녀의 속삭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다.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는 자신이 불행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무엇보다 가장 원했을 그 약간의 온기, 그녀의 배에 닿은 내 손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나가 결국 그녀에게 돌려줄 수 있게 만드는 그 따스한 온기가 그에게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에 자네의 일부라고 느껴지는 게 하나라도 있나? 아니, 없을 거야. 왜 그런지 알아? 그건 우리가 멸종된 종에 속하기 때문이지. 우린 그저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들인 거야. 그뿐이지.” 그가 시가에 불을 붙이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내가 몰랐다면 그것은 오랜 역사를 지닌 아름다운 유럽이 아주 명료하고 신중하며 단호하게 자살 시도를 하고 있을 때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누구였던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고향의 전선에서 서로를 학살하던 사람들, 바로 그들이었다. 우리는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났고, 우리 어머니들의 허리를 끌어안은 그들의 손은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본문 중에서

레오의 외로움과 불안을 진정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친구 그라지아노뿐이다. 백만장자인 아내를 둔 그였지만 항상 술집을 전전하며 취해 있는, 레오처럼 ‘남은 음식(avanzo)’에 만족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탈리아어로 남은 것, 잔재,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에서 원치 않고 버려진 잔해 또는 불필요한 인간을 의미하는 ‘남은 음식’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이다. 바로 레오의 삶의 본질을 꿰뚫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레오는 사는 아파트, 파티에서 허기를 채워 준 견과류나 냉장고의 음식, 애인이 생긴 남편을 둔 여자에 대한 끌림,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누군가가 타던 고물 자동차까지 모두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남은 것들이다. 그라지아노는 레오에게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처음으로 두 사람은 영화 대본을 쓰기 위해 ‘남은 음식’, 즉 다른 사람들에 의한 선택이 아닌 자신들의 의지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영화 제작은 결국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그라지아노는 아리아나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이를 레오에게 털어놓고, 레오 또한 아리아나의 마음속에 다른 남자를 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세상에 그들을 위한 온전한 것이라고는, 그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죽음 외에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상하게 슬프지도 않았다. 적어도 너무 많이 슬프지는 않았다. 조금 지친 것은 맞다. 확실히 그랬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전차를 타고 있었다. 운이 좀 좋으면 역 가판대에서 좋은 책을 발견하고 기차도 너무 붐비지 않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책은 재미있었고 기차는 거의 비어 있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서야 슬픔이 밀려왔다. 기차가 다른 방향, 그 어떤 방향으로 향해도 내게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본문 중에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렌조의 집을 찾은 레오는 그곳에서 깊은 환멸을 느끼고 그동안 의미 없는 삶을 살던 자신을 품어 주었던 로마에서 완전히 단절되고 고립되었다는 기분을 느낀다. 그는 지친 마음으로 향수(鄕愁)를 안고 밀라노행 기차에 오른다. 하지만 밀라노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자란 거리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고향을 떠나 있는 동안 많은 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고, 그의 부모 또한 이미 자신이 없는 삶에 익숙하고 충실한 모습이었다. 레오는 이제와 그들의 안정된 삶에 자신이 끼어들어 가족들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는 깜짝 등장을 그만두기로 하고 어릴 적 향수를 달래줄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 소시지 가게를 찾아 돌아다니다 괜찮은 곳을 찾아낸다. 따끈한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를 넣은 샌드위치에 소금에 절인 양배추와 머스터드를 조금 추가해 먹으며 역 쪽으로 걸으면서 생각한다. 이것만으로도 밀라노에 올 가치가 있다고. 다시 로마행 기차에 오른 레오는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로마든 밀라노든 애초에 자신이 있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레오, 내 친구.” 그라지아노가 분수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 두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리 중 하나라는 느낌이 든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야.”
—본문 중에서

우리를 둘러싼 군중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상 한 사람이 느끼는 고독과 그곳에서 이는 모순을 모른 채 피할 방법은 없다. 더욱이 미디어로 넘쳐나는 세상이 발전하면 할수록, 단절된 세대를 거듭하면 할수록 그 고독과 모순의 깊이는 더욱 깊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도시의 마지막 여름》이 오랜 시간 동안 출간과 절판을 거듭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컬트 소설로 자리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 곁에 실재하는 감정이며 현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가 느끼는 고독은 어쩌면 우리만의 것이 아니며, 모순된 세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모두 시간과 장소가 낳은 환상일 뿐일지도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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